“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 제공하고 싶다” -배현수 한의과대학 교수
독성은 제거되고, 항암 효능만 증폭시킨 새로운 신약후보 물질 개발
올해부터 본격적인 임상연구 착수…신속승인 통한 조기 신약 허가 ‘목표’배현수 교수(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배현수 교수(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편집자 주] 최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배현수교수가 종양 성장을 돕는 대식세포를 선택적으로 표적해 사멸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고형암에서 항암 효능을 나타내는 펩타이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관련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Journal for ImmunoTherapy of Cancer’에 게재했다. 본란에서는 배현수 교수로부터 연구를 시작한 계기 및 향후 연구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연구를 시작한 계기 및 배경은?
“면역세포 조절을 통한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오던 중 자연계의 독성분(venom)들이 펩타이드 형태로 면역세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 중 인간에서 효능이 보고된 한 물질이 동물모델에서도 강력한 항암효과를 보인 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후 해당 물질의 특성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암세포 자체에는 직접적인 독성이 없으면서도 종양 크기를 효과적으로 줄인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됐고, 이는 면역세포에 작용하는 새로운 유형의 면역항암제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된 계기가 됐다. 더불어 추가 연구를 통해 이 물질의 표적이 종양 내 존재하는 M2형 종양관련대식세포(TAM)이며, 그 결합 분자가 활성화된 형태의 CD18 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기반으로 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분자구조를 재설계하고, 세포 특이적인 독성 펩타이드를 결합해 신물질 ‘TB511’을 합성한 결과, 기존에 존재하던 용혈 작용과 같은 독성은 제거되고, 항암 효능만을 증폭시킨 새로운 신약후보 물질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Q. 연구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이를 해결한 과정은?
“이번 연구의 가장 큰 난제는 TB511의 결합 타깃인 분자 구조체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먼저 대식세포에서 발현하는 수십만 개의 단백질로부터 TB511이 결합하는 단백질을 질량분석기로 선별하는 작업과 이후 선별된 수십개의 단백질을 하나 하나 유전자편집 기술로 제거 하면서 결과적으로 TB511이 CD18 단백질에 결합한다는 점은 밝혀내면서 큰 고비를 넘기는 듯 했지만, 또 다른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즉 CD18은 정상 면역세포 에서도 광범위하게 발현되는 단백질이라는 점에서, 암 특이적인 표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설을 세웠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던 중, 미국 박사과정 시절 연구하던 G 단백질(G protein)의 구조-기능 상관성이 떠올랐다. CD18은 인테그린 계열 단백질로, 활성화 상태에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혹시 ‘활성형 CD18’이 종양 내에서 특이적으로 존재하며 TB511이 이에만 결합한다면, 종양 특이적인 반응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됐다.
이에 따라 AI 기반 단백질 결합 분석, 인간 조직 샘플, 인간화 동물모델 등을 활용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끝에 이 가설을 입증하는데 성공했으며, 이후 TB511의 세포 내 이동 경로를 규명하는 실험이 필요해졌고, 학부 시절부터 친분 있는 화학과 강성호 교수와의 협력을 통해 고해상 3차원 단분자 추적 현미경을 활용한 실험으로 TB511이 세포막을 통과해 세포질로 이동하는 시간과 속도를 직접 검출해 내는 데도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애물은 편견이었다. 기존 신약 개발 방식은 바이오마커를 먼저 규명하고, 그에 결합하는 약물을 찾는 방식인 반면 이번 연구는 이미 사용 중인 약물에서부터 출발해 거꾸로 표적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는 전통적인 학계에서 익숙하지 않은 접근 방식이 었고, 연구진 내에서도 수차례 검증과 토론을 반복해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꾸준함과 문제 해결 중심의 사고방식,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유기적인 협력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기존 인간에 쓰여왔던 물질을 재해석해 창출한 신물질이기에, 임상에서의 효과를 더욱 기대할 수 있게 됐다.”
Q. 이번 성과가 기존과 어떤 부분이 차별화 됐는지?
“TB511의 가장 큰 차별성은 ‘정밀 종양 타겟팅’ 기능이다. 기존 면역조절 약물은 광범위하게 작용해 정상 면역 세포까지 억제할 위험이 있었던 반면 TB511은 종양 내 에서만 활성화된 CD18을 표적으로해 M2형 대식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또한 펩타이드 기반 물질이라는 특성은 항체 기반 약물에 비해 제조, 전달,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하며, 종양 침투력이 뛰어나고 신장 배출율이 높아 테라노스틱스(진단+치료) 용도로의 확장 가능성도 갖추고 있다.
TB511은 단순히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넘어, 암이 숨어있는 면역환경 자체를 바꾸는 정밀 면역조절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향후 이 기술이 암뿐만 아니라 다양한 난치성 질환에도 확장되기를 기대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Q. 향후 실용화를 위한 과제는?
“활성형 CD18 기반의 펩타이드 치료제는 기존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던 고형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특히 병용치료뿐만 아니라 단독 치료제로서도 개발 가능성이 크며, 다양한 고형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면역억제성 M2 대식세포를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췌장암, 대장암, 비소세포폐암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
더불어 고형암뿐 아니라 대식세포의 과활성이 병인의 핵심인 MASH, 폐섬유화, 자가면역질환 등에서도 응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앞으로 실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먼저 약물의 안정성과 반감기를 개선한 제형 개발 및 활성형 CD18 구조를 활용한 동반진단법 확립, 펩타이드의 낮은 면역원성과 제조 효율을 유지하면서 약동학 특성 개선 및 대량생산 공정 확립이 있다.
현재 국내외 제약사들과의 기술이전 및 공동연구 논의도 활발히 진행 중이며, 임상 진입 및 실용화를 위한 후속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Q. 꼭 이루고 싶은 목표나 후속 연구계획은?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지금까지의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활성형 CD18을 표적으로 한 정밀 면역조절 신약이 실제 암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 TB511에 대해 식약처로부터 임상 1/2a상 시험을 승인받아 올해부터 본격적인 임상연구에 착수하게 됐으며, 신속승인을 통한 조기 신약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기존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군에서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임상 데이터로 입증하고자 한다. 또한 이번 연구를 통해 활성형 CD18이 M2-TAM의 특이적 바이오마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근거가 확보된 만큼 이를 기반으로 면역세포 리프로그래밍 전략이나 약물전달 플랫폼 확장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TB511을 넘어, 다양한 고형암 및 자가 면역 질환에 적용 가능한 정밀 면역조절 플랫폼 기술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로, 이를 통해 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고자 한다.”
기사원문
2025.05.09